KNSF NOBEL COLUMN

지식강국 대한민국을 꿈꾸는 지식인들이 직접 기고하는 칼럼입니다.
과학과 사회, 교육과 정책의 경계에서 던지는 질문을 함께 나눕니다.

노벨칼럼 NOBEL COLUMN 2026. 10. 09  |  한국노벨과학포럼

노벨상은 오디션이 아니다

후보자를 찾아 무대에 세우는 상이 아니다. 세계가 주목할 연구성과가 끊임없이 탄생하는 토양을 가꾸는 일이 먼저다.

남궁근  한국노벨과학포럼 과학정책연구원장
남궁근 한국노벨과학포럼 과학정책연구원장
남궁근 한국노벨과학포럼 과학정책연구원장

해마다 10월이면 한국 사회는 노벨과학상 수상자 발표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올해도 일본에서 수상자가 나왔다는 소식에 부러움과 아쉬움이 교차한다. 일본은 수많은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했지만, 한국은 아직 한 명도 없다. 그러다 보니 세계적 수준의 한국 과학자를 발굴하고, 국제학계에 알리고, 노벨상 후보로 추천하는 방안에 관심이 쏠린다. 그러나 노벨상은 오디션이 아니다. 유망한 후보자를 찾아 무대에 올린다고 받을 수 있는 상이 아니다.

노벨과학상은 수십 년에 걸친 독창적인 연구와 국제학계의 검증을 통해 주어진다. 노벨위원회의 초청을 받은 전문가만 후보자를 추천할 수 있으며, 자기 추천은 허용되지 않는다. 후보 추천은 수상의 출발점일 뿐, 수상을 결정하는 것은 연구업적의 탁월성과 학문적 영향력이다. 따라서 한국이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누구를 노벨상 후보로 추천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노벨상에 걸맞은 연구성과가 지속적으로 나올 수 있는가’이다.

일본의 경험은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일본 정부는 2001년 제2기 과학기술기본계획에서 향후 50년간 노벨상 수상자 약 30명을 배출한다는 장기 목표를 제시했다. 같은 해 일본학술진흥회(JSPS)는 스톡홀름에 사무소를 설치하고 북유럽 학계와의 교류를 확대했다. 해외 연구자 초청과 공동연구, 학술행사 등을 통해 일본 과학자들이 국제학계와 긴밀하게 연결되도록 지원했다. 그러나 일본의 노벨상 수상을 이러한 교류 활동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 바탕에는 오랜 기간 축적된 기초과학 연구역량과 대학 및 연구기관의 연구 전통이 있었다.

정책학자의 관점에서 더욱 주목할 점은 정책의 지속성이다. 일본은 지난 25년 동안 여러 차례 정권이 교체됐지만, 기초과학 육성과 국제학술 교류를 위한 지원체계를 꾸준히 유지해 왔다. 노벨과학상은 중요한 연구성과가 발표된 뒤 수십 년이 지나 수여되는 경우가 많다. 연구의 시간과 정치·행정의 시간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5년 단임 정부가 단기 성과에 집착한다면 30년이 걸리는 연구를 제대로 지원하기 어렵다. 5년짜리 시계로 30년짜리 경기를 치를 수는 없는 일이다.

여기에서 과학기술정책의 근본적인 문제가 드러난다. 노벨상 수상자 수는 국가 과학기술 역량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지만, 정부가 직접 통제할 수 있는 정책성과는 아니다. 연구의 창의성과 학문적 영향력, 국제적 인정에는 수많은 요인이 작용한다. 따라서 노벨상 수상을 국가적 비전으로 제시할 수는 있어도, 수상자 수 자체를 단기 성과지표로 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정부가 책임져야 할 것은 세계적 연구성과가 지속적으로 창출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을 만드는 일이다. 무엇보다 기초연구에 대한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세계적인 발견은 처음부터 성공 가능성이 분명한 연구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실패 위험이 크더라도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 연구비 지원이 단기 실적에 지나치게 연동되면 연구자들은 도전적인 연구보다 성공 가능성이 높은 안전한 연구를 선택하게 된다. 창의성을 장려하면서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제도는 결국 창의성을 위축시킨다.

연구자의 자율성과 연구환경도 중요하다. 우수한 연구자가 행정업무와 잦은 평가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고 연구에 몰두할 수 있어야 한다. 젊은 연구자들이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경력 경로를 마련하고, 대학과 연구기관이 독창적인 연구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연구평가도 논문 수와 단기 목표 달성률을 넘어 장기적인 학문적 기여와 새로운 연구영역의 개척 가능성을 중시해야 한다.

국제학술 네트워크 역시 중요한 연구 기반이다. 한국 과학자들이 세계적 연구자들과 공동연구를 수행하고 국제학술회의에서 성과를 발표하며 국제 연구공동체의 일원으로 활동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일본의 스톡홀름 사무소 사례가 주는 교훈도 단순히 노벨상 추천인들과 가까워지는 데 있지 않다. 세계 학계와 지속적으로 교류하면서 연구의 질을 높이고 우수한 성과가 국제적으로 검증되고 확산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데 있다.

한국은 6·25전쟁의 폐허에서 출발해 짧은 기간에 세계적 수준의 과학기술 역량을 구축했다. 이제는 추격형 연구개발을 넘어 새로운 지식과 학문적 발견을 선도해야 할 단계다. 이를 위해서는 연구개발 예산의 규모뿐 아니라 지원의 안정성, 연구자의 자율성, 정책의 지속성이 중요하다. 정권 교체나 단기적인 재정 여건 변화에 따라 기초연구 지원이 크게 흔들려서는 안 된다. 기초과학 연구역량의 축적은 5년 단임 정부의 임기를 넘어 일관되게 추진해야 할 장기적 국가과제다.

노벨상 수상자를 발굴하고 국제학계에 알리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는 이미 축적된 우수한 연구성과가 정당한 평가를 받도록 돕는 보완적 수단이어야 한다. 순서가 바뀌어서는 안 된다. 노벨상 수상자를 찾아내는 정책보다 노벨상에 걸맞은 연구성과가 지속적으로 나올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정책이 먼저다.

노벨상은 오디션이 아니다. 심사위원의 눈에 들 후보자를 찾아 무대에 세우는 일이 아니라, 세계가 주목할 연구성과가 끊임없이 탄생할 수 있는 토양을 가꾸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가 기다려야 할 것은 노벨상 수상자의 이름이 아니라, 세계 과학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한국 연구자들의 발견이다. 노벨상은 그러한 축적의 결과로 따라오는 영예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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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칼럼 NOBEL COLUMN 2026. 09. 30  |  한국노벨과학포럼

2026년 노벨과학상이 박남규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

2012년 논문 한 편이 하나의 학문을 열었다. 노벨상이 기려 온 것은 언제나 그런 출발점이었다.

임지순  한국노벨과학포럼 물리양자연구원장 · 포항공과대학교 석학교수
임지순 한국노벨과학포럼 물리양자연구원장
임지순 한국노벨과학포럼 물리양자연구원장
포항공과대학교 석학교수

다음 주 수요일인 10월 7일 저녁, 스웨덴 왕립과학한림원이 올해 노벨화학상 수상자를 발표한다. 해마다 이 무렵이면 한국 과학계는 기대와 체념이 뒤섞인 한 주를 보낸다. 평화상과 문학상은 있지만 과학 분야 수상자는 아직 한 명도 없다. 그러나 올해 나는 조금 다른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린다. 수상자 명단에 올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한국 과학자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성균관대학교 박남규 종신석좌교수다. 우리 포럼 학술원에서 함께 활동하는 동료이지만, 그런 인연을 떠나 한 사람의 과학자로서 그의 업적을 말하고자 한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이야기는 2009년에 시작된다. 일본의 미야사카 쓰토무 교수 연구진이 페로브스카이트 결정을 염료감응 태양전지의 광흡수체로 써서 3.8%의 효율을 보고했다. 흥미로운 발견이었지만 실용성은 없었다. 액체 전해질에 닿으면 결정이 금세 녹아 버렸기 때문이다. 이 물질을 실제로 작동하는 소자로 바꾼 사람이 박 교수다. 그는 액체 전해질을 걷어내고 고체 정공수송층을 도입한 전고체 구조를 설계해, 2012년 9.7%의 효율로 500시간 넘게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세계 최초로 보고했다. 과학계가 이 물질을 ‘진짜 태양전지’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순간이다.

그 뒤의 일은 과학사에서도 보기 드문 속도로 전개됐다. 전 세계 수많은 연구실이 이 분야로 뛰어들었고, 박 교수의 2012년 논문은 거의 1만회 가깝게 인용되며 ‘페로브스카이트 광전지’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의 출발점이 되었다. 실리콘 태양전지가 수십 년에 걸쳐 도달한 효율을 페로브스카이트는 불과 십여 년 만에 따라잡았다. 단일 전지 효율은 27%를 넘어섰고, 실리콘 위에 페로브스카이트를 쌓은 탠덤 전지는 단일 접합 전지의 이론적 한계를 이미 뛰어넘었다. 용액을 바르고 굽는 저온 공정으로 만들 수 있어 가볍고 휘어지는 전지, 건물 창호에 붙이는 전지로 가는 길도 열렸다. 실험실의 발견이 산업의 지형을 바꾸는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물리학자의 눈으로 보아도 이 물질은 경이롭다. 나는 오랫동안 제1원리 계산으로 고체의 전자구조를 연구해 왔다. 보통의 반도체는 결함과 불순물이 조금만 섞여도 성능이 크게 떨어진다. 그래서 실리콘은 극도로 순수하게 정제해야 하고,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런데 할로겐화물 페로브스카이트는 용액으로 손쉽게 만든 다결정 박막에서도 전하가 먼 거리를 이동한다. 결함이 생겨도 전자가 쉽게 붙잡히지 않는, 이른바 ‘결함 관용성’ 덕분이다. 그 근원을 밝히려는 이론 연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하나의 발견이 화학과 물리학, 재료공학을 한꺼번에 움직이게 만든 것, 그것이 박 교수 업적의 진짜 무게다.

노벨상은 한 분야를 열어젖힌 출발점에 주어진다. 2019년 리튬이온전지, 2023년 양자점, 지난해 금속유기골격체에 이르기까지 최근의 노벨화학상은 인류의 삶을 바꾼 물질과 그 물질을 처음 손에 쥔 사람들을 기려 왔다. 국제 과학계는 이미 박 교수를 그 반열에서 보고 있다. 2017년 클래리베이트가 그를 노벨화학상 후보군인 ‘피인용 우수 연구자’로 선정했고, 2022년 영국 랭크상, 2024년 이탈리아 에니상, 2025년 독일 훔볼트 연구상이 뒤를 이었다. 2023년에는 스웨덴 왕립과학한림원이 주관한 노벨 심포지엄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초청돼 발표했다. 노벨상을 결정하는 바로 그 기관이 마련한 무대였다. 성균관대는 올해 2월 그를 국내 최초의 종신석좌교수로 추대했다.

물론 노벨상은 예측의 영역이 아니다. 한 분야의 수상자는 최대 세 명이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역사에는 이 물질을 처음 광흡수체로 쓴 미야사카 교수, 비슷한 시기에 다른 구조로 고효율을 보고한 영국 옥스퍼드대의 헨리 스네이스 교수 같은 이름도 함께 있다. 장기 안정성이라는 숙제도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 분야가 노벨상을 받는다면, 전고체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처음 증명한 박 교수의 이름이 빠지기는 어렵다고 나는 본다. 가능성을 실체로 바꾼 결정적 한 걸음이 그의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5년 일본의 NIMS 상은 박남규, 미야사카, 스네이스 교수 이상 세분이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개발업적으로 수상하였다.

박 교수의 이력에는 우리 과학계가 새겨야 할 대목도 있다. 그는 기업 연구원으로 일하다 다시 대학원에 들어갔고, 지도교수의 권유로 처음 페로브스카이트를 만났다. 출연연구소를 거쳐 대학에 자리 잡는 동안에도 그 결정구조를 30여 년 동안 놓지 않았다. 유행을 좇기보다 한 우물을 깊이 판 연구자가 끝내 새로운 분야를 연 것이다. 노벨상은 한 사람의 영예이지만, 그 한 사람을 길러 내는 것은 한 나라의 연구 생태계다. 다음 주 스톡홀름에서 들려올 소식이 무엇이든 우리가 할 일은 분명하다. 제2, 제3의 박남규가 한 우물을 끝까지 팔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도 올해만큼은, 조금 더 큰 기대를 걸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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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칼럼 NOBEL COLUMN 2026. 07. 19  |  한국노벨과학포럼

기초과학 연구는 시장 실패의 영역이다

과학 강국의 조건은 실험실 안에만 있지 않다. 그 조건의 상당 부분은 투표소에 있다.

윤성식  한국노벨과학포럼 명예회장 ·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윤성식 한국노벨과학포럼 명예회장
윤성식 한국노벨과학포럼 명예회장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물리학, 생물학, 화학과 같은 자연과학 연구에는 오래된 통념이 있다. 노력하고 실력을 갖추면 성과로 이어진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연구의 결실은 운과 환경에 크게 좌우된다. 물론 운도 준비된 사람에게 온다는 말은 옳다. 능력과 노력이 전제되지 않으면 기회가 와도 잡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전제를 갖춘 뒤에도 운이 작용하는 몫은 여전히 크다. 세계적으로 뛰어난 업적을 남긴 과학자들 가운데 스스로 운이 좋았다고 고백하는 이가 적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극소수를 제외한 많은 인재가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 채 연구 인생을 마감한다. 자연과학 연구는 성과의 편차가 대단히 큰 영역이다. 어떤 연구자는 크게 꽃을 피우지만, 같은 능력을 지닌 다른 연구자는 평범한 이력으로 끝난다. 의사의 길은 이와 대조적이다. 웬만하면 상위 수준의 소득이 보장되고, 운에 좌우되는 정도가 훨씬 덜하다. 정년의 구애를 받지 않으니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일할 수 있다. 아흔을 넘겨 파트타임으로 진료를 이어가는 의사도 있다. 한국에서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학자의 소득은 의사에 미치지 못한다. 결국 두 길의 차이는 분명하다. 자연과학자의 길은 위험 부담이 큰 길이고, 의사의 길은 위험 부담이 작은 길이다. 이 차이는 우리 사회의 일상적인 정서에도 그대로 배어 있다. 딸이 자연과학자와 결혼하겠다고 하면 부모는 걱정한다. 의사와 결혼하겠다고 하면 걱정하지 않는다. 개인의 선택을 탓할 일이 아니다.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누구나 위험이 작고 보상이 확실한 쪽을 택한다.

자연과학 연구는 시장 실패의 대표적 사례이다. 기초연구의 성과는 사회 전체가 나누어 갖지만, 그 위험은 연구자 개인이 홀로 감당한다. 편익은 공유되고 비용은 사유화되는 구조에서는 시장이 적정한 양을 공급하지 못한다. 정부가 나서서 이를 교정하지 않으면 과소 공급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자연과학자의 수가 넘친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머릿수가 아니라 질이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은 우수한 인재의 과소 공급이다. 최상위 인재가 거의 예외 없이 의대로 향하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것은 시장 실패를 교정해야 할 정부마저 실패하는 경우다. 불과 몇 해 전 정부는 ‘카르텔’을 거론하며 국가 R&D 예산을 대폭 삭감했고, 과학계는 큰 혼란을 겪었다. 온 세계가 인공지능에 자원을 쏟아붓던 시기에, 카이스트의 인공지능 연구실조차 예산 삭감의 타격을 받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시장이 실패해 정부가 개입하는데, 그 정부마저 실패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결국 남는 것은 국민의 몫이 된다. 다시 말하면 결국 국민이 교정하는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문제를 하나하나 파헤쳐 들어가다 보면 놀랍게도 같은 결론에 이른다. 정치가 문제다. 과학정책도 예외가 아니다. 연구비의 규모와 배분, 인재가 어디로 향할지를 결정하는 유인 구조는 모두 정치의 산물이다. 과학을 위해서도 정치를 바로 세워야 한다. 그 출발점은 정치인을 탓하는 데 있지 않다. 상식을 갖춘 유권자가 되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 과학 강국의 조건은 실험실 안에만 있지 않다. 그 조건의 상당 부분은 투표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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